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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호상 박사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신라인들의 국제결혼과 다문화가정"
윤용찬 기자 / yyc3113@naver.com입력 : 2016년 08월 24일
↑↑ 치술령 망부석(경주 외동읍).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왜국에 볼모로 잡혀 있는 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여 신라로 보내지만 자신을 탈출하지 못하고 왜국의 섬, 목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그의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이 곳에 올라 왜국 쪽을 바라보며 슬피 울다가 죽어서 마침내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됐다한다. 치술령은 경주시와 울산시의 경계구역에 자리 잡고 있는 765m의 고개이다.

이 곳 정상부근에는 각기 망부석이라는 바위를 하나씩 가지고 있지만 위치나 전망 등으로 볼 때 경주지역의 망부석이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형상 행정구역의 경계에 많은 문화재가 연결되어 있어 경계지점의 문화유산은 ‘아전인수’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공동구역으로 설정해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홍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국적이 다른 남녀의 혼인을 국제혼이라고 하는데, 신라는 왜국, 가야국, 백제 왕실을 중심으로 국제결혼이 이루어졌음을 [삼국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신라 제16대 흘해니사금 3년 3월에, 왜국의 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들의 혼인을 청하므로 아찬 급리의 딸을 보내 주었다. 35년 2월에 왜국이 또 사신을 보내어 혼인을 청하므로 신라는 앞서 여자의 출가를 이유로 거절했다.

제23대 법흥왕 9년 3월에는 가야국의 왕이 사신을 보내어 혼인을 청하므로 왕이 이찬 비조부의 누이를 보냈다. 제24대 진흥왕 14년 10월에는 왕이 백제왕의 딸을 데려와 소비(小妃)로 삼았고, 제30대 문무왕 20년 3월에는 고구려의 유민을 규합해 고구려 부흥운동을 펼치던 안승이 신라에 망명해 고구려 보덕왕으로 봉해지고 680년 문무왕의 누이를 비로 맞았다.

문무왕은 보덕왕에게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과 비단 100단을 내리고 왕의 누이를 그에게 시집가게하고 교서를 보내어 ‘인륜의 근본은 무엇보다도 부부가 제일 앞서며 왕실의 기초는 후사를 잇고 심의를 서로 돈독히 해 종사(宗社)를 받들고 자손을 번성하게 하여 길이 반석을 크게 해야한다’했다. 그는 문무왕으로 부터 김씨의 성을 받고 신무왕 3년에는 소판의 벼슬을 받아 신라의 귀족이 됐다.

신라의 여러 국제결혼 중에서도 대표적인 내용은 소지마립간 때, 백제 동성왕 15년 ‘봄 3월에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혼인을 청하자 신라왕은 이찬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바로 다음해에 고구려가 신라를 공격하여 신라군이 ‘견아성’에 포위당하여 있을 때 백제 동성왕은 군사 3000명을 보내 구원해주었고, 다시 그 다음해에는 고구려가 백제의 ‘치양성’을 포위해오자 신라 소지마립간이 장군 덕지(德智)에게 명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해 주었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외에도 553년 진흥왕이 백제의 한강유역을 점령한 직후에 백제의 성왕이 왕녀를 진흥왕의 소비(小妃)로 보낸 것은 신라군으로부터 한강 하류지역을 반환받기 위한 고육책에서 나온 조처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고대사회에서의 국제결혼은 본인이나 부모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나라의 정책적인 친교 수단의 한 방법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국제결혼이 오늘날과 같이 일반인들 사이의 결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오늘날에는 남녀 당사자인 자신의 뜻에 의하여 신분에 관계없이 국제결혼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국제결혼으로 다문화 가정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더욱 남의 일이 아니다.

수 천 년을 동일한 문화 속에서 생활해 온 우리민족에게 타국, 타문화를 단숨에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우리의 풍습에 익숙하듯이 그들에게 그들의 풍습이 익숙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들의 문화와 풍속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그분들도 우리의 문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은 모든 인간은 평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선행된다면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더욱 너그러워질 수 있다. 5월 부부의 날을 맞이해 상대국의 풍습과 예절을 존중하는 가정들이 많아지기를 바래본다.
 
↑↑ 김호상 박사.
   

윤용찬 기자 / yyc3113@naver.com입력 : 2016년 0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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